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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경상북도

원성왕릉(괘릉)- 경주 꼭 가볼만한 곳 추천! 신라 무인상 문인상 숨겨진 포인트

by 오래토록 2021. 12. 2.

원성왕릉(괘릉)- 경주 꼭 가볼 만한 곳 추천! 신라 무인상 문인상 숨겨진 포인트

 

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원성왕릉(괘릉) - 무인상(석상)"에 대해 알게 된다. 이 무인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사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든 시험의 포인트로 출제되기도 한다. 

 

무인상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얼굴이 신라인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신라시대에 서역인과 교류하였다는 증거로 이 무인상을 이야기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공부하여 국사시간에 배웠던 무인상을 직접 보고 싶었고 드디어 보게 되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국사책의 국보, 보물을 실제로 보면 마치 연예인을 본듯한 반가운 마음이 든다.

 


◆ 원성왕릉, 경주 가볼만한 곳 추천.

 

 

원성왕릉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원성왕릉은 이곳에 오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 않으면 경주에 놀러 왔다가 쉽게 들를만한 곳은 아니다. 경주 시내와 거리가 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원성왕릉이 처음이라면 한 번은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깔끔하게 마련된 주차장을 보니 이곳은 경주시에서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곳이란 게 드러난다. 주차장에는 깨끗한 화장실 건물도 마련되어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원성왕릉으로 가는 길에는 안내도와 원성왕릉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여행지에 가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국내의 우리 문화재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있으니 이런 안내문은 한번쯤 읽어보고 가는 게 더 많은 걸 느끼고 올 수 있다. 자주 들르는 곳도 아니니 이왕이면 안내문만큼은 읽어보는 투자를 하는 게 좋다. 

 

 

 

 

경주 원성왕릉 사적 제26호

이곳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이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손이다.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김주원과 경쟁을 하여 왕위에 올랐다. 학문적 능력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고 발해에 사신을 보내 교류하였다.
원성왕이 돌아가신 후에 봉덕사 남쪽에서 화장하여 토함산 서쪽 골짜기의 곡사에 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괘릉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무덤을 만들 때 물이 괴어 널을 걸어 묻었다는 조선시대의 민간신앙과 결부된 전설에 따른 것이다. 
이 능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능묘 조각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 봉분의 가장자리에 돌판과 버팀돌로 만든 둘레돌이 있다. 버팀돌에는 무장을 한 십이지신상을 조각하고 주위로 돌난간을 둘렀다. 봉분 남쪽에 능역의 표시로 세우는 돌기둥인 화표석, 무인상,무인상, 돌사자를 좌우로 마주 보게 배치하였다. 특히 무인상은 신라인보다는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원성왕릉 안내도는 거창해보였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내용이었다. 원성왕릉과 석상 및 석주, 주차장, 화장실 위치를 알려준다.

 

 

 

 

해가 질 무렵에 방문했더니 노을이 보일락 말락 하기 시작했다. 원성왕릉 주변은 오래되고 멋들어진 소나무 숲이 있어서 이곳이 좀 더 신성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사적 26호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는 이쪽이 원성왕릉 입구이다.

 

 

원성왕릉 입구.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양쪽에 석주가 있다.

 

 

경주에서 신라의 왕릉을 몇 군데 보았는데 신문왕릉에 비하면 상당히 개방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왕릉에서 멀찍이 떨어진 이곳에서 석상들이 마주 보고 배치되어 있다 보니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들기도 했다.

 

 


◆ 원성왕릉 석상 : 무인상, 문인상과 돌사자

원성왕릉 석상. 무인상과 문인상. 

 

 

가장 보고 싶었던 원성왕릉 무인상. 교재에서 무인상을 사진으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런데 너무 놀랐다. 이 무인상이 이렇게나 큰 거였어???

 

무인상의 키가 상당히 크다. 깜짝 놀랐다. 일반 사람의 키 2배는 되는 것 같다. 교재에서 보통 보는 무인상은 정면으로 찍은 무인상의 얼굴에 초점을 둬서 그런가 뭔가 짜리 몽땅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작은 석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이렇게 큰 석상이었다니!

 

사람 키를 그냥 훌쩍 넘겨버리는 큰 석상이라 보자마자 적잖이 놀랐고 그리고 감탄했다. 사진보다 더 위엄이었어 보이고 멋있다.

 

 

양옆을 지키고 있는 석상들과 원성왕릉. 내가 본 신라 왕릉중에서 가장 멋있었다. 

 

 

석상의 얼굴은 책에서 본 그대로다. 각진 얼굴에 턱수염이 머리까지 이어진 모습. 큰 코와 움푹 들어간 눈. 누가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무인상의 모습. 이제와 보니 이쪽 무인상은 얼굴표정은 살아있으나 다리쪽이 소실되었나 보다. 반대쪽 무인상은 다리가 끝까지 있다.

 

 

실제로 신라 무인상을 보아서 신기했던 터라 요리조리 뜯어봤다. 소매에 팔을 걷어올린 디테일이나 한 손에 칼을 들고 있는 모습, 옷의 주름이 보인다. 다른 한 손은 올리고 옆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처리와 꽉 다문듯한 입술. 강인함이 엿보인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던 석상이 이렇게 아직까지 제대로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싶었다.

 

 

문인상. 문인상의 비밀은?

 

 

그리고 무인상 옆에 있는 또 다른 석상이 무인상. 누가 보아도 문인인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양손은 모으고 옷의 소매자락이 길게 늘어졌다. 그런데 문인상의 얼굴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약간 역사 속 중국인?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콧수염의 모양 하며 눈매나 이런 것들이 그렇게 보인다. (문인상이 중국인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왕릉을 지키고 있는 석상 석주와 돌사자상

 

오른쪽에 있던 문인상, 무인상, 돌사자상을 감상하고 이제 원성왕릉을 보러 올라갔다.

 

 


◆ 원성왕릉 

원성왕릉 

 

 

원성왕릉 주변으로는 뒤에 소나무가 더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왕릉은 꽤 큰 편이었고 왕릉 주변은 관리가 아주 깨끗하게 잘 되어 있었다.

 

 

원성왕릉. 연못 위에 만들어서 그런가 습한 느낌이 가득했다. 

 

왕릉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 물이 흘러 나가도록 설계된 모습이 보였다. 

 

원성왕릉은 사실 괘릉이라 불렸었는데 원래 이 자리에 연못이 있었고, 연못 자리에 무덤을 만들다 보니 자꾸 물이 생겨서 관을 바닥이 아닌 수면 위에다 걸어두었다고 해서 괘릉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고 괘릉이라고만 불리다가 한동안 문무왕릉이라 추측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31년 원성왕릉 주변에서 비석 조각 하나가 발견되면서 문헌에 비추어 봤을 때 원성왕릉이라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원성왕릉을 뒤로 하고 본 풍경. 너무 아름다웠다. 

 

 

원성왕릉에서 아래를 바라본 모습. 황금빛 논이었을 때 방문해서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초록의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지고 양 옆은 수호하듯 멋진 소나무가 감싸고, 저 너머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논이 보이는 모습. 10월쯤 방문하면 이런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경주의 왕릉을 여러 군데 가봤지만, 이렇게 왕릉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원성왕릉은 통일신라시대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무덤이라고 한다는데 무덤의 형태뿐 아니라 석조물도 한몫을 한다. 

 

 

원성왕릉의 노을.

 

 

세상에.

핑크빛으로 물드는 노을에 철새도 한 무리 지나간다.  멋있다 멋있다 하는데 더 멋있는 풍경이 내 눈앞으로 지나갔다.

 

 

돌사자상. 2마리의 고개가 다른곳을 향한다.

**돌사자는 총 4마리, 한쪽에 2마리씩 배치되어 있는데 안쪽에 있는 돌사자 2마리는 고개가 왕릉 입구를 향해있다. 

돌사자상은 앉아있는 형태였다.

 

 

원성왕릉을 보도 나오는 길. 이번엔 반대편의 석조물을 감상했다. 문인상이나 무인상을 보면 보존이 꽤 잘 되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돌사자상은 훼손된 모습이 보였다.

 

 

원성왕릉을 마주봤을 때 왼편에 있던 무인상. 서역인상. 신라시대의 서역인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쪽에 있는 무인상은 얼굴이 반대쪽보다 잘 안 보인다. 반대쪽은 표정이 살아있는 듯했는데 원성왕릉을 마주 보고 왼편에 있는 무인상은 얼굴 하관 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른편에 있는 무인상은 얼굴표정은 살아있지만 발 끝부분이 소실되었다.

 

**무인석은 왕릉 입구 쪽에 배치, 문인석은 안쪽에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봉분과 가까운 쪽에 문인석이 배치되고 입구와 가까운쪽에 무인석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원성왕릉의 모든 걸 보았다 하고 나가려는 순간.

한쪽에 석상들에 대한 안내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일괄

보물 제 1427호
신라 제 38대 원성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조물들이다. 남쪽부터 화표석이라고도 하는 능역의 표시로 세우는 돌기둥이 있고 문인상, 무인상, 각 1쌍과 돌사자 4마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놓았다. 석주는 능의 입구를 알려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런 구성은 원성왕릉이 처음이며, 이후 신라 왕릉 조각의 본보기가 되었다.
특히 이국적인 얼굴의 무인상이 있어 주목된다. 이 무인상을 신라와 중앙아시아가 문물을 활발히 교류하였다는 증거로 보기도 하고, 불교의 신장상과 관련짓기도 한다. 관복을 입은 문인상도 관복 위에 갑옷을 걸쳤고, 두 손으로 긴 칼을 세워 쥐고 있어 무관상으로 보기도 한다. 이 조각상은 관복으로 덮여 있어 칼자루가 보이지 않지만, 두 발 사이에서 칼끝을 확인할 수 있다.

 

 

어라...?

문인상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석상이. 글쎄, 칼을 쥐고 있다고?? 두 발 사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그렇담 다시 제대로 확인해봐야지!!

 

원성왕릉을 마주보고 왼편에 있던 무인상. 칼 끝이 희미하다. 아래쪽은 훼손된 것 같다.
원성왕릉을 마주보고 오른편에 있던 무인상. 칼 끝이 두 발 사이에 선명하게 보인다.

 

 

진짜다.

안내문의 말처럼 무인상의 발 사이에 칼 끝이 선명하게 보인다! 원성왕릉을 마주 보고 왼편은 무인상이건 문인상이건 훼손이 좀 되어있었고 오른편에 있던 무인상과 무인상은 상대적으로 훼손이 덜 되어 있어서 더 디테일한 석상을 확인하고 싶다면 오른편에 있는 석상을 보는 게 나았다. 

 

문인상이 칼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안내문을 보지 못했다면 모른 채 돌아왔을 뻔했다. 그래도 늦게라도 안내문을 확인하고 문인상의 비밀도 알게 되어서 뿌듯했다. 

 

 

 

원성왕릉을 다 보고 나오니 이제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이곳에 핑크빛 하늘까지. 거기다 철새 군무도 감상할 수 있었던 이날. 너무 아름다워 하늘을 빤히 쳐다보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아름다운 하늘과 함께한 경주 여행.

원성왕릉을 방문한 날. 무인석을 처음 본 날. 잊지 못할 경주여행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하는 1920년도에 찍은 문인상과 무인상, 돌사자상과 석주 사진을 보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무인상과 문인상 중에서 하반신이 흙에 파묻혀있고 옛날 사람이 그 옆에 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옛 사람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석상이 있던 자리를 찍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사진을 보면 석상이 파묻혀있기도 하고 비뚤게 자리잡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제대로 남아있다는게 참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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